[포항극동방송원고]성경을 읽으며, 잠깐 시대를 논하다
*이 원고는 지난 2009년 한해 동안 포항극동방송의 <김대진 목사의 라디오 문화칼럼> 원고 중의 하나입니다. 함께 나누었으면 해서 올려드립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도 용서해주시고, 지적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샬롬
요즘 우리 교회는 교회 홈페이지의 성경쓰기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문화의 위력을 느낍니다. 매년 송구영신예배 때마다 성경읽기표를 나누어주었건만 작심삼일! 평상시에도 성경을 읽자고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요지부동이던 성도들이 인터넷 성경프로그램을 대하고서는 어른 아이 할 것없이 경쟁적으로 성경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달리다굼>으로 깨어났듯이, 말씀에 잠자던 교회가 이 프로그램으로 깨어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인하고 거부한다 하더라도 이 세대는 컴퓨터 모니터와 자판기, 그리고 그 속에 펼쳐지는 온라인의 세계를 떠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가져나온 보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을 지었듯이, 이 세상의 문화로도 하나님의 거룩한 문화를 창조할 길을 모색하는 것 또한 이 시대의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네요. 그런데 성경을 죽 써 내려가다 보면, 날마다 새로운 묵상과 깨달음을 주는 말씀 앞에 깜짝깜짝 놀라며 자판기를 멈추어 세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게다가 다시금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흥미진진한 열왕들의 이야기는 과거 인기있던 용의 눈물이나, 요즘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 선덕여왕와 같은 역사 드라마에 비할 바 없는 쏠쏠한 재미에 파묻히게 됩니다.
늘상 성경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역사가 우리 역사와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야 많이 달라져서 역사의 소프트웨어야 같을 리 없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역사의 틀이나 교훈은 크게 다를 바 없기에,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솔로몬왕 이후, 하나의 민족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둘로 갈라지면서, 때로는 서로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때로는 대립과 갈등 관계 속에 흘러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남북으로 둘로 갈라져 있는 한반도의 현대사와 신기하게 닮아 있다고 느낀다면 지나친 상상일까요?
아시다시피 여로보암에서 시작되는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열왕기에서는 나와 있지만, 에스라가 쓴 역대기에서는 쏙 빠져있습니다. 다윗의 혈통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에 보면, 북이스라엘 왕들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악행과 우상숭배를 이어간 악한 역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 유다는 다윗왕조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선민의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왕들도 대부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 유다에 우상 숭배가 없었느냐? 그건 아니었지요. 남북할 것 없이 백성들의 우상숭배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특히나 북이스라엘의 악독한 왕이었던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 남유다의 여호람의 왕비가 되면서 바알숭배는 남유다 궁의 안방에까지 치고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예후라는 북이스라엘의 왕이 남침을 감행하였을 때, 아합의 딸로 남유다국의 대왕대비가 된 <아달랴>는 권력에 대한 욕심과 또 자기가 북이스라엘에서 가져온 바알숭배를 남유다에 합법적으로 퍼트리기 위해, 다윗의 혈통으로 남아 있던, 자신의 손자나 조카뻘이 되는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과 우상숭배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잘 보여주는 섬짓한 한편의 남량특집드라마 같아보입니다. 하지만, 그런대로 남 유다의 왕들은 우상숭배에 대하여 경계를 하고 때로는 요시아왕 처럼 강력한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왕들이 하나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라는 기록을 남긴 반면에, 남 유다의 왕은 북이스라엘과 밀월관계를 유지하였던 왕들을 제외하고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남북관계를,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의 남북조시대에 비추어 본다면 몇가지 시사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 국민들 가운데 남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통일의 열망을 갖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특정한 세력의 권력을 유지시키거나, 또는 우상숭배와 같은 다른 이면적인 목적을 달성할 목적으로 밀월관계를 맺었을 때에, 치명적인 우상의 문화가 유입되었고, 그리고 그로 인해 엄청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긴다면, 머리를 빼고, 가슴으로만 남북관계에 접근을 주장하는 것은 참 위험스러운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폴 틸리히는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고, 종교는 문화의 실체라고 했습니다. 문화의 통일, 이데올로기의 통일이 선행되지 않고, 정치적 요구에 의해 감상적 통일을 주장하게 될 때 닥치게 될 위험성은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간의 남북 밀월관계가 과연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남북관계는 고사하고, 남남갈등만 증폭시켰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남북조시대를 읽어내려가면서, 선민적 우월성을 가졌던 유다가 북 이스라엘 문화와 접촉할 때, 보기 좋게 knock down되는 모습들은 참으로 안타깝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참, 하나만 더 할까요? 유다왕조의 역사를 가만히 읽어보면, 유다의 왕들 중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하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라는 칭찬 반, 꾸지람 반의 기록들이 종종 나옵니다. 아사랴, 아마샤, 요담왕이 다 그랬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기록을 남기게 되었을까요?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왕들의 개인적인 믿음은 나름대로 좋았다고 봅니다. 우상숭배를 떠나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상에 빠져 있는 일반백성들에까지 확실하게 그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봅니다. 왕 자리를 유지하려면 백성들의 눈치도 많이 봤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알고 하시는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장로 대통령을 세운 뒤로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우상을 훼파해야 할 장로가 사찰 같은데 가서 합장이나 하고 이러면 되겠느냐고 열을 내십니다. 그렇게 보면, 장로 대통령도 유다 왕들처럼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기록을 남겨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일신을 섬기는 민족인데, 우상이 묻어 들어 온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기독교 국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앙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다원주의 현실에서 장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면서, 타종교에 대하여 훼파와 강요 보다는, 지혜와 설득을 통해 모든 국민들을 품도록 기도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