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어떻게 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라디오문화칼럼의 김대진 목삽니다.(2009 05 26 극동방송 문화칼럼-6)
오늘은 영화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혹시 여러분, 영화 좋아하십니까? 근래에 여러분들
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가 있다면 어떤 영화였습니까? 사실 저는 대학에서 대중문화를 가
르치고 있지만, 연예시절, 두 세 번 정도 지금 저의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 갔다 온 이후로
몇 해전 딱 한번 어떤 교회의 문화 특강 강사로 갔다가 그 교회의 수련회 프로그램 때문에
마지못해 영화관을 방문했던 기억 밖에 없습니다. 영화에 대한 저의 지론은, 영화 사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개봉 영화도 1~2년이 지나면 TV에서 설날특집
이나 추석특집 같은데 꼭 방영을 하기 때문에, 굳이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다고 느낍니다.
아, 물론 확실히 재미는 떨어집니다. TV 브라운관의 크기도 영화관의 스크린에 비하면 초
라하기 짝이 없고, 안방이나 거실에 아무리 비싼 홈시어터를 구비해도, 영화관의 빵빵한 음
향효과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입니다. 게다가 1~2년이 지나면, 이미 여기저기서 그 영화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를 주워들었기 때문에, 긴장감도 많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
나 어쩌겠습니까? 영화관 취향이 아니라 안방 TV 취향인 걸 말입니다.
경제적 이유나 시간적인 여유나 취향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관을 선호하지 않
는 데에는 제 나름대로의 기독교 문화관도 개입되어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너무 시류
나 유행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는 약간은 보수적인 문화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리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류와 유행이라는 땅에 문화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하늘의 영원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멀어질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이지
요. 최신 영화가 개봉되기만 하면 영화의 내용이나 질을 따져보기 전에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영화관을 쫓아다니는 못 말리는 몇 몇 우리 청년들의 말을 들어보면,
땅에 문화에 너무 집착하면 하늘의 문화와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는 다른 또 다른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최신 유행하는 영화들을 못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아니면, 최신 정보를 즉각 쌓아두지 않으면, 왕따나 되지 않을까 하
는 두려움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를 다니면서, 시류와 유행에 민감한 청년들은 최신 개봉영화가 별로 신앙
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 반성경적, 반기독교적인 영화에 까지 기꺼이 헌금을 바치기
도 하며, 또 교회와 상관없이 시류와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같
은 기독교성이 짙은 개봉영화관에 갔다가 무슨 뜻인지로 모르고, 기독교인 관객들의 흐느
낌 소리를 자장가로 듣다가 잠만 자고 왔다는 웃지못할 일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가 있다는 어떤 광고의 카피처럼, 영화도 골라보는 재
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항상 세상과 교회라는 긴장관계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 그리
스도인들은 더더욱 영화와 같은 문화를 통해 알게 모르게 들어오는 비기독교적이고, 반기
독교적인 메시지들을 잘 골라 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를
지배하는 자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글자나 소리보다도 몇 배나 강력하게 우리의 뇌리와 마음속에 imprint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개봉된 노잉(knowing)라는 영화를 혹시 보신 분이 있습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니콜라스 케이지>입니다. 한국 개봉에 맞추어 영화 홍보차 한국에 들러 자신을 케서방이
라고 소개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유명 헐리우드 스타가 한국 여자가 결혼했기 때
문입니다. 이 영화의 짧은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1959년에 윌리엄 도즈 초등학교의 한
학급 학생들이 앞으로 50년 뒤에 꺼낼 타임캡슐에 넣을 그림들을 그려 넣습니다. 그런데 루
신다 엠브리라는 학생은 그림 대신에 일련의 숫자로 도화지를 가득 채웁니다. 그건 지구의
종말에 대한 계시였습니다. 숫자는 여러 재앙들이 일어날 연도와 날짜이고,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50년 뒤 정확히 2009년도에 타입캡슐 속에 들어 있는 50년 전 어
린 여선지자의 숫자 계시가 주인공 손에 들어가게 되고, 그 계시는 일점 일획의 오차도 없
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마침내 종말의 끔찍한 환상이 케서방 아들에게 보이기 시작하고,
우주에서 강림한 심판자들이 하나씩 지구를 파괴해 갑니다. 정해진 지구의 운명을 막을 길
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구의 심판자들이,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택
받은 케서방 아들과 또 한 명의 여자 어린이들을 데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생명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휴거시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는 듯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고 이 영화가 기독교 영화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이 영화는 <딥 임팩트>나 <지구가 멈
추는 날>과 같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종말론 영화일 뿐입니다.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고 종교는 문화의 실체라고 했던가요? 이런 류의 영화들은 기독교 문
화에 깊이 뿌리박은 서양인들이, 성경의 테두리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기에 성경에서 종
말론의 모티프만 차용했을 뿐, 기독교의 종말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이비 종말론인 것입니다. 사이비 이단 종교들이 내세우는 종말
론 보다 이런 영화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종말론을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영상의 설득력
이 오늘날 교회와 가정과 학교를 합한 힘보다 더 강력하게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입
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이라면, 시류와 유행과 재미에 마음
을 빼앗기기보다, 알고보고, 골라보는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