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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십자가 자살-우리가 더 져야 할 십자가가 있는가?

김대진2026. 3. 9. PM 4:01:19조회 148

십자가 자살 사건에 대하여

지난 5월 1일 경상북도 문경의 한 폐광산에서 58세된 남성이 십자가에 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되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자살의 도구가 십자가이고, 자살자가 기독교에 심취했던 사람이며, 전직 목사의 이름까지 오르내리는 형국이니 우리 사회의 반기독교적인 정서에 또 하나의 빌미를 얹어준 셈입니다. 비기독교인들이야 언론에 보도되는 교회는 교회고, 목사면 목사라고 알지 가짜 교회가 무엇이며, 가짜 목사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턱이 없고, 알 필요도 없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교회, 진짜 목사 중에서도 이래저래 사회의 눈총을 받을만한 일들이 심심찮게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건,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에서도 짝퉁이 버젓이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팔리듯이 기독교라고 왜 가짜 기독교, 사이비 기독교가 없겠으며, 목사 중에서도 왜 짝퉁 목사가 없겠습니까? 이번 사건도 가짜 기독교 신앙의 전형적인 사례로 길이길이 남을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시신으로 발견된 이 분을 두고 참 말들이 많습니다. 신자든 비신자든 간에 대부분 미친 짓이라고 비난합니다. 그 중에 많은 분들이 한국 교회가 그와 같은 광신도를 양산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제 정신이 아닌 신자들 가운데 그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을 정도로 믿음이 좋았을 거라고 착각하는 무지몽매한 자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길게 말씀드릴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 자살은 기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달렸다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도, 예수님을 닮은 자도 전혀 아닙니다. 혹 이 분에게 십자가 자살을 가르친 교회가 있다면 명백히 가짜 교회요, 십자가 자살을 가르친 목사가 있다면 일백 퍼센트에서 단 일 퍼센트도 뺄 수 없는 가짜 목사입니다.


첫째,(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한 개인의 사사로운 종교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신앙을 제대로 배운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믿고 있듯이 그것은 온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적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프로젝트 속에 포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도 아니었거니와 대속의 죽음은커녕, 예수님께서 대속의 사랑으로 이분에게 주신 생명까지 스스로 빼앗는, 자기 자신의 죄까지도 씻을 수 없는 죽음일 뿐이었습니다.


둘째,(이런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무력화 혹은 무효화하는 우를 범하는 반기독교적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에게 더 이상 죽음의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도록 만든 은총의 죽음이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이 사람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십자가를 져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단 한번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하나님과 죽을 운명인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 모두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절)

그러므로 이 분은 기독교 신앙을 따른 자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무력화 혹은 무효화 시킨 자입니다. 기독교가 뭡니까?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리스도는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다는 말은 죄의 삯인 사망의 짐에서 자유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망의 짐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말은 더 이상 죽음의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이미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자신이 또 짊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능력을 무력화 또는 무효화시키고 만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기독교의 정반대쪽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처럼 골고다 언덕 닮은 곳에 올라가 손에 못 박고 허리에 창찌르고, 피 흘려 죽는,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달려야 할 십자가에 대신 매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나의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일 뿐입니다.


셋째로, (기독교의 구원관과는 거리가 멀다) 기독교는 자기 몸을 자해하거나 고통을 가함으
로써 육체의 구원을 이루는 고행이나 수도의 종교가 아닙니다. 어떤 종교들은 육체가 인간의 구원에 장애물이라고 믿고, 육체에 고통을 가함으로써 영성을 고양시키려고 시도합니다. 바위에 육체를 부딪히거나 돌멩이를 들고, 손을 찧는 자해 행위를 합니다. 심지어 어떤 종교는 육체를 죽이는 것만이 영혼의 자유를 얻는다고 가르침으로써 집단 자살극을 벌이기도 합니다. 육체가 영혼을 가두는 감옥쯤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기독교는 내가 당해야 할 고통을 대신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십자가의 육체적 고통을 알알이 체험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자해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절대로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는 육체 때문에 짓는 것이 아니라 더욱이 마음의 문제요, 영적인 문제입니다. 정말 찢어야 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요, 영혼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요엘 2:13a)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렘 4:4절). 빌립보서 3:2-3절은 우리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몸으로 체험함으로써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교적이며 반기독교적 행태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알았으면 합니다.

넷째로,(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진 십자가는 순교의 십자가였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린 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경우, 예수님께서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고 예언하신 대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극심한 박해를 당할 때에, 잔인한 로마 군인들이 지하묘실인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리던 기독교인들에게 기습적으로 나타나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끌어내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광장에서 십자가에 처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매달린 십자가는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을 체험하고 싶어서 매달린 자해적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십자가는 신앙을 지키다가, 혹은 진리를 전하다가 당한 순교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처럼 타인에 의해 강요된 박해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십자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졌던 십자가인가요? 꼭 묻고 싶습니다. 북한에서, 혹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십자가를 질 각오로 선교하시는 분들이 떠오릅니다. 혹 그들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다면, 통곡할 일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한껏 보장된, 너무 보장되어서 더 이상 게으를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야 할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죽음은?

다섯째,(예수님께서 지라고 하셨던 십자가) 성경에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라고 하지 않으셨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절). 혹시 이 말씀 때문에 진짜로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그래서 이 분이 주님의 길을 따라갔다고 믿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하기야 갈라디아서 4: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는 구절을 들고 거두절미, 앞뒤 문맥 다 무시하고(무시하는지, 무식한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기독교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으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라고 했기에 진짜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는 분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분은 눈이 범죄했다고 진짜로 눈을 뺄 분이고, 오른 손이 범죄하였다고 오른 손을 벨 분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진리와 복음을 위하여 어떤 고난도 감수하라는, 어떤 핍박도 감내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에서도, 정통 교회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그래서 이 어처구니 없고 말문이 막히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 이와 아무 상관도 없는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이 글은 지금까지 경찰의 발표대로 자살 사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쓴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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